퇴로리(이씨고가)
화악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퇴로마을은 여주 이 씨 집성촌으로 전통 한옥이 잘 보존되어있다.
처음에는 함평이 씨가 살았다 한다. 밀양에서 교동. 다원. 퇴로가 좋은기운 을 내는 땅으로 꼽는다.
퇴로리는에서 신라시대의 유물이 나오는걸보면 아주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아던걸로 생각된다.
여주 이 씨는 조선조 연산 군시절쯤 전거한걸로 나와있다, 처음에는 함평이씨가 살아어며 일제강점기 때에
퇴로 앞뜰 논을 저수지로 수용되면서 이거했다고 한다. 여주이씨의 삼은정(경남문화재자료 629호). 이 씨 고가
(경남문화재자료 112호). 서고 정사(경남문화재자료 477호) 등 문화재가있는 오래된 마을이다.
마을앞에에는 가산저수지(옛날에는 퇴로 못이라 했음) 있는 주변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서고 정사는 항재 이익구(1838~1912년)가 고종 27년(1890년)에 두 명의 동생 농구. 명구 와함께 단장면 무릉에서 퇴로로 입거 하여 8년째 되는 해에 주의의 경관도 즐기면서 교육과 독서 저술에 전념 키위 해 지은 별업이다.
그리고 밀양사람도 잘 모르는 퇴로리 동쪽 기슭에 있는 물고기. 나무. 술을 숨기고 살고 싶다 뜻인 삼은정 이 있다.
삼은 정은 100년 전 1904년에 여주 이 씨 후손인 용재 이명구(1852~1925)가 지었다. 종택 담밖에 지은 별당들이다.
서고 정사. 천연정. 삼은정 은 세 아들 집이라고 한다. 삼은정은 대왕소나무 등 나무들이 유명하다.
마을입구에 있는 몇백살쯤 되보이는 고송이 길위를 덮고 있었어 운치스러웠는데 잘려나가고 없네요
퇴로마을신을 모시는 당집.원시 무속적신앙 한걸음 나아가 유교화 한것이 특색이다.
이 씨 고가는 퇴로리에 거주하는 여주 이 씨 종가다. 안채. 사랑채. 별채로 구성되어있다.
조선 후기 고종 27년(1890년) 이익구가 지은이래 100여 년 5대에 걸쳐 집을 옛 그대로 잘 보존하고 있는 전통가옥이다.
근대 한옥은 국가등록문화재 제152호이다. 부북면 퇴로리 18-7에 있다.
1910년 무렵 일제 강점기에 건립되었다. 이 가옥은 1907년에 전통적인 교육과 함께 측량술 등의 기술을 배우도록 하기 위해 "화산 의숙" 설립한 항재 이익구(1838~1912)의 차남 이병수가 거처하던 곳이다. 정진학교 도 설립하여 후학에 힘 섰다. 우리 어려서 정진 국민학교 가 그것이다. 지금은 폐교가 되었다. 이곳 근대 한옥은 조선 후기 양반집 건축 형식과 배치 규범을 따르고 근대 한옥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옛날고가와 담장들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화산의숙(정진국민학교)
* 항재 이익구가 화산의숙 으로 설립(1899년~1910년)
* 1921년 3월25일: 정진의숙 으로 다시 문을열어 윤리.도덕.애국정신.신지식함양 에대한 내용을가르쳤다.
사립 정진학교로 이름을 고치고(1922년) 계속 학교를 유지 하다가 민족교육과 단군기원의 사용.배일교육.
애국사상의 고취가 문제되어 모든 교원들이 일제의 경찰에 구금되기도 했다.
* 1939년4월: 일제에 의해 강제 페교되었다.
* 1942년 6월10일: 부북공립국민학교 부설 퇴로간이학교로 개편
* 1945년 4월10일: 화양 국민학교로 승격
* 1960년4월1일: 정진국민학교로 개칭
* 1975년11월30일: 동문회에서 교정에 "정진의숙창학기념비세움)
* 1993년2월19일: 64회(5.202명졸업)끝으로 부북국민학교 정진분교 로 편입
*1996년3월1일; 부북초등학교 정진분교로 개칭
*1998년8월31일; 부북초등학교 본교로 통합
폐교이후 임실치즈스쿨로 활용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