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하씨시조 3

대항리 하비공파(護軍公派)

진양하씨호군공파 밀양 입향세거지 기념비 이곳은 진양하씨 호군공파의 밀양입향 세거지이다. 마을이름은 대항이고 또는 수동이라고도 한다. 호군 휘 비공은 고려 구국충절신 증 문하시랑 동평장사 휘 공진 시조공의 16대손인데 조선조 초 호군으로 재임중 단종의 손위로 1455년에 기관하고 고장진주 수곡면 효자리 정곡에서 은거하다 만년에 외조부 고려 공민왕 의 외손 재령이씨 사재령 휘 일선공이 계시는 밀양으로 전거하였다. 공은 아드님 세분을 두었는데 장자 휘 구천공은 성균생원 이고 차자 휘 치천공은 별시위 사과 를 지냈고 삼자 휘 수천공은 사간원 헌납과 외보찰방 을 역임하였다. 휘 구천공 의 아들 휘 충공 호 돈재선생은 점필재 김종직선생의 문인으로 문과급제하고 사헌부 집의 로 재직중 연산군이 왕위에 오르자 사직원 를..

진주하씨시조 2021.06.14

진주하씨 시조(시랑공파)

始 祖 진양 하 씨 시조는 고려 현종 조의 충절신으로 문하시랑 평장사에 추종된 하공진(河拱辰) 공이다. 공의 순절로 인하여 진주가 충절의 고장으로 칭송되었다.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는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거란과 갈등. 여진과 갈등 대몽항쟁 등으로 정말 많은 전쟁을 겪습니다. 거란의 1차 침입 때 유명한 서희의 담판을 통해 얻은 강동 6주를 요새화 하여 전란을 대비하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에 활동한 공 입니다. 고려사에 따르면 공은 진주 출신으로 성종 시기 994년 "압강 도구 당사"에 임명되었습니다. 목종 때에는 "상서 좌사낭중" 역임하였다. "압강 도구 당사"는 고려에서 거란으로 가는 길목인 압록강에 설치된 요충지를 관할하는 관직입니다. 공은1009년(목종12)목종이 궁궐의화재로 상심하여 병이들어 중량..

진주하씨시조 2021.05.16

한목문화재(재실이야기).제사축문 이해.추억의 묘사

永 慕 齋(영모재) 영모재는 밀양에 사는 하 씨 종중의 각종 행사나 선조의 제향을 봉 향하는 재실이다. 밀양 대항에 위치한 이곳이 호군 공 비(備)의 5 세손 영모 공(永慕公) 재정(再淨)이 18세에 임진왜란을 만나 청송으로 피난하였다가 선조 32년(1599)에 귀향하여 선조의 유적을 추 감하여 지은 것이다. 재실 편액을 영모재라 이름했는데 후손들이 공의 호로 삼았다. 영모 재기(永慕齋記) 본 재실은 처음으로 창건한 것이 곧 명나라 만력 연간이었는데. 선조 영모재 공의 묘소가 있어서 그대로 이름 붙인 것이다. 공은 임진왜란 당시에 몸을 빼어 청송 땅으로 화를 면했는데 난리를 피해 다닐 때에도 나라를 걱정하고 임금에게 충성하는 뜻을 개연한 감회를 읊은 시가 있다. 그중에 명나라 장수가 왜적을 격파하였다는 ..

진주하씨시조 2021.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