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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목문화재(재실이야기).제사축문 이해.추억의 묘사

永 慕 齋(영모재) 영모재는 밀양에 사는 하 씨 종중의 각종 행사나 선조의 제향을 봉 향하는 재실이다. 밀양 대항에 위치한 이곳이 호군 공 비(備)의 5 세손 영모 공(永慕公) 재정(再淨)이 18세에 임진왜란을 만나 청송으로 피난하였다가 선조 32년(1599)에 귀향하여 선조의 유적을 추 감하여 지은 것이다. 재실 편액을 영모재라 이름했는데 후손들이 공의 호로 삼았다. 영모 재기(永慕齋記) 본 재실은 처음으로 창건한 것이 곧 명나라 만력 연간이었는데. 선조 영모재 공의 묘소가 있어서 그대로 이름 붙인 것이다. 공은 임진왜란 당시에 몸을 빼어 청송 땅으로 화를 면했는데 난리를 피해 다닐 때에도 나라를 걱정하고 임금에게 충성하는 뜻을 개연한 감회를 읊은 시가 있다. 그중에 명나라 장수가 왜적을 격파하였다는 ..

진주하씨시조 2021.05.12

남곤의 출생지(1471~1527)

남곤은 의령 남 씨로써 부친은 곡산 군수를 지낸 남 치산이다. 남곤의 부친은 하비(河備)공(3남 구천공의딸)사위로써 처가인 이곳 한목(대항리)에서 살며 남곤은 둘째로 태어났다고 한다. 어린 젊은시절 함께한 한목이 남곤에게는 출생지이며 고향인것이다. 남곤의 조부는 사간원 사간 을지 낸 남규. 증조부는 참지 문하부사를 지낸 남을지. 병조판서를 지낸 충무공 남이 와는 족질이다. 남곤은 어린 시절 외사촌인 하충과 더불어 밀양 지동(제대리)에 있는 점필재 김종직의 문하에 수학하였다. 그는 24세 어린 나이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시작하였다. 홍문관 수찬. 홍문관 응교. 부제학 등을 거쳤고 1504년 페비 윤 씨와 관련된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화를 입어 귀양길에 오르기도 했다. 중종반정으로 인해 귀양에서 풀려난..

경남 밀양시 부북면 대항리(한목)

慶南 密陽市 府北面 大項里(대항2리).여름이면 푸른벼가 넘실되고 가을이면 황금벼가 추수를 기다리는 논의뒤편에 자리잡은 진양하씨 집성촌으로 세거한지 550년되는 유서깊은마을이다. 마을이름은 大(큰대)項(목덜미항)의 웟부분에 해당하므로 웟목또는 한목이며 옛날에서 수동이라고도 했다. 1454년(단종3년.을해년) 하비공이 복거하기시작하여 그자손들이 대대로 살게되었다. 화악산(華嶽山)의 한줄기 지맥이 서쪽으로 뻗어내려. 허황산. 형제봉. 명방현 등으로 이어지고. 다시 동으로 구부러져 동구 쪽으로 감싸고 있으니 이것이 마을 안산이다. 이 안산이 일자봉.또는 파초봉 이라고 부르고 있다. 화악산 분수령에 흘러내리는 물이 또한 서쪽으로 작은시냇물이 흐르고 그 형상이 흡사 항아리 같기도 하고 배 같이 보이기도 한다고 하여..